잃어버린 복음의 능력 (고린도후서 10:13~18)
13 우리는 마땅한 정도 이상으로 자랑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까지 다다른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하여 주신 한계 안에서 된 일입니다.
14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분에게로 가지 못할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까지 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것은, 한계를 벗어나서 행동한 것이 아닙니다.
15 우리는 주제 넘게 다른 사람들이 수고한 일을 가지고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바라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자람에 따라 우리의 활동 범위가 여러분 가운데서 더 넓게 확장되는 것입니다.
16 우리는 여러분의 지역을 넘어서 복음을 전하려는 것이요, 남들이 자기네 지역에서 이미 이루어 놓은 일을 가지고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17 자랑하려는 사람은 주님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18 참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세워 주시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가 자랑할 가장 큰 특권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자랑하는 것 중에서 가장 큰 축복이기 때문이기에 그렇습니다. 전도는 교회에 나오라고 초대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영원한 구원의 생명의 소식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우물가의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던 것처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경험하도록 전해주는 특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영혼들마다 구원 받기 원하시는 열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향한 구원의 열정은 한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바울은 사랑의 한계를 가지고 있지 않으신 예수님을 경험함으로 고린도교회에까지 복음을 전했던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랑의 한계에 부딪쳐 멈추어 서는 것에 있습니다. 인생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랑할 수 없을 때 오는 것입니다. 인생의 한계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 한계를 뛰어 넘으십니다. 예수님 안에 거한다면 우리는 생명이 자라는 한계를 제한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근원은 우리의 마음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잠언 4:23)
세상에서 심지어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의 마음을 잃어버린 것을 봅니다. 복음은 이들에게 생명으로 전해져야 합니다. 복음에는 생명을 전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서 그분의 복음의 능력으로 모든 일들 가운데 생명을 불어 넣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렇지만 이 부분을 생각으로 인식하더라도 현실에서 영이신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과 나의 현실에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의 역사가 무의미해지게 됩니다.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예수님께서 나의 삶에 지금 역사하고 계신다는 믿음이 복음의 중심에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지금 오늘 나에게 예수님께서 역사하고 계시다고 믿는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오늘도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의 구원의 날, 은혜의 날임을 선포합니다.
고린도후서 6:1~3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도록 하십시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은혜의 때에, 나는 네 말을 들어주었다. 구원의 날에, 나는 너를 도와주었다.’하셨습니다. 보십시요,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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