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힘들 때 육적인 반응이 먼저인가? 영적인 반응이 먼저인가? (창세기 25:30~34)
30 야곱에게 말하였다. ‘그 붉은 죽을 좀 빨리 먹자. 배가 고파 죽겠다.’ 에서가 붉은 죽을 먹고 싶어 하였다고 해서 , 에서를 에돔이라고 한다.
31 야곱이 대답하였다. ‘형은 먼저, 형이 가진 맏아들의 권리를 나에게 파시오’
32 에서가 말하였다. 이것봐라, 나는 지금 죽을 지경이다. 지금 나에게 맏아들의 권리가 뭐 그리 대단한 거냐?’
33 야곱이 말하였다. ‘나에게 맹세부터 하시오.’ 그러자 에서가 야곱에게 맏아들의 권리를 판다고 맹세하였다.
34 야곱이 빵과 팥죽 얼마를 에서에게 주니, 에서가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나갔다. 에서는 이와 같이 맏아들의 권리를 가볍게 여겼다.
에서는 배고픔 가운데서 자신의 맏아들의 권리를 팔아버리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그는 영적인 권리보다 육신의 배고픔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에서는 영의 귀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우리가 그것을 가치있게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의 진리들과 구원이 얼마나 귀하고 가치있는지를 잊어버리고 산다면, 우리는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싸움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진 영의 축복들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시간 가운데 들어갈 때, 정말 귀한 것들을 팔아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육적인 반응은 조급하게하며 시각을 영원한 것에서 순간만 모면하면 되는 시각으로 좁아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그 때만 이겨낼 수 있는 찬스정도로 사용합니다.
믿음은 영원한 것입니다. 구원의 믿음을 누렸던 예수님의 발을 닦았던 여인은 복음과 함께 영원히 그녀가 한 일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는 것은 영원한 일입니다. 에서는 이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영의 영원한 축복을 육신의 연약함으로 조급하고 가치없게 여기며 팔아버렸습니다.
우리는 힘들때 육적인 반응이 먼저 일어납니까? 아니면 영적인 반응이 먼저 일어납니까?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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