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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혜사 성령님의 사역 (창세기 24:27~50)

jeremy kim Articles/individual articles

by jeremy_kim_78 2018. 10. 3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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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혜사 성령님의 사역 

 

 사라의 죽음은 우리에게 이중적인 구조를 말하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 영과 육, 시작과 끝, 겉사람과 속사람으로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보이는 영역과 보이지 않는 영역을 말합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영역을 더 사모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라의 삶을 통해서도 역시 보이지 않는 영역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라고 권면하고 싶습니다. 

 

 모든 인간은 죽음을 언젠간 경험합니다. 그 죽음 앞에서 두려움 없이 설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의 의미를 인생의 끝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의 시작으로 보는 눈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사라의 죽음은 우리에게도 부활을 사모하고 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 사라의 장막에 들어올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리브가는 영적으로 교회를 상징하며 그리스도의 신부를 의미합니다. 혼인잔치는 예수님과 교회가 맺은 언약과 같기 때문입니다. 

 

 리브가는 아브라함 종과 낙타에게 물을 마시우게하고 헌신함으로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사람이라는 것을 확증합니다. 리브가는 ‘헌신, 봉사, 희생’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리브가가 또한 낙타에게 물을 마시게 했다는 것은 ‘자유의지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리브가와 같이 교회는 헌신되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기로 결정해야 합니다. 교회의 목적이 하나님의 형상을 알아가고 믿음으로 닮아가기를 원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혼인잔치로 준비된 신부로써 만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리브가가 신랑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아브라함의 종은 마치 성령님의 사역과 같다는 것을 느낍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시고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보혜사로 도우시는분이십니다. 나를 항상 도와주시는 분을 우리가 모셔드리는 것이 진정한 ‘자유의지’입니다. 

 

 자유의지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맘대로 할 수 있는 ‘나의 선택이 방해 받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의지는 ‘성령님이 나를 도우시도록 내어드리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라고 말씀하셨듯이 진리의 성령(요16:13)이신 성령님이 나를 도우시도록 내어드릴 때, 우리는 자유케 될 줄 믿습니다. 

 

 아브라함의 종과 같이 성령님의 사역이 우리 삶에 역사되어지기 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로써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부르시며 회복하는 성령님의 동행하심을 볼 수 있게 되기 원합니다. 성령님이 함께하심을 더욱 묵상하고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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