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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위하여 심는자 (갈라디아서 6:8)

jeremy kim Articles/individual articles

by jeremy_kim_78 2018. 10. 3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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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나는 나의 육체를 위해 얼마나 많이 일하고 심고 있는가? 육체의 일을 하면서 기대하는 것은 안식과 인정받음이 아닐까? 그것이 썩어질 것이라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거둔 것이 썩어진다고? 그러면 썩지 않게 하기 위해서 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할 것인가? 

 

 이번주 고구마를 거두면서... 고구마를 심고 케고 그것을 보관하고 썩어진 것을 보면 낙심이 되고, 또 잘 관리하기 위해 힘쓰고... 육신의 일은 끝없는 노동을 요구하는 것 같다. 그것이 내가 관리한다고 썩지 않을 것이 아닌데... 나의 육신도, 내 일도, 내가 열심히 노력하는 것들은 언젠가 썩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내가 때마다 깨달을 수 있다면 나의 노력의 포커스가 영원한 것을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성령을 위하여 심는자’를 묵상하면서 ‘성령으로 심는자’로 잘못 묵상해 왔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항상 ‘성령으로’ 심으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을 위하여 심는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무엇을 하든지 성령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이다. 

 

 술자리에서 ‘위하여~’라는 단어를 종종 쓰는 것을 본다. 우리는 무엇을 위할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나의 ‘위하는 것’은 무엇인가? 더 잘 사는 것? 더 유명해지는 것? 더 착해지는 것? 나의 능력을 더 키우는 것? 나는 왜,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가? 

 

 그럼 성령님은 누구이신가? 성령님은 보혜사 성령으로 불리신다.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로 이것은 ‘부른다. 초청한다. 위로한다. 격려한다’에서 온 형용사이다. 종종 명사로 ‘변호자, 탄원자, 중보자’를 가리킨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자’는 나를 변호하시고 중보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위해 사는 사람을 의미한다. 내 삶에서 나를 도와주는 분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은 가장 큰 능력일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를 도와준 사랑으로 인해 나의 삶의 의미가 달라진 것이다. 성령님이 나를 얼마나 많이 도와주셨는가?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이 기도하시고 중보하고 계시는가? 나는 다 알지 못한다. 내가 그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면 나의 삶은 놀라울 정도로 변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를 위해 살지 않게 되는 근본적인 영혼의 변화를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이 변화는 기쁨으로의 초대와 같은 것 같다. 두렵고 떨리지만 성령님을 위해 사는 것은 성령을 의지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성령님이 나를 위해 헌신하셨다면 그 헌신이 나를 변화시켜 온전하게 이룰 것을 믿는 믿음과 함께 역사되어지는 것을 느낀다. 

 

 여기서부터 내 지식과 경험으로 알 수 없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가게 된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시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성령님의 헌신을 내가 알 수 만 있다면, 성령님의 기도소리를 내가 들을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 그분의 마음은 부드럽고 활기차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변화의 소리와 같다. 성령을 위해 심는 삶을 살 때, 나는 성령님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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