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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계시 (요한복음 13:26~38)

jeremy kim Articles/individual articles

by jeremy_kim_78 2016. 2. 2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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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계시 (요한복음 13:26~38)


 사도 바울은 신앙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보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없을 때에는 눈으론 보고 있으나, 영으로는 보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삶에 하나님의 계시되어지지 않은 진리는 단회적입니다. 계시되어 지지 않은 진리는 생각에만 머물고 그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계시들을 주셨습니다. 오늘 아티클에서 한 주제를 나누고자 하는것은, 실패에 대한 계시입니다. 그 주인공은 본문과 같이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통해 한 계시를 받게 되는데, 예상과 달리 실패에 대한 계시였습니다. 


요한복음 13:26~38

시몬 베드로가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은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올 것이다.’하고 대답하셨다. 그때 베드로가 ‘주님, 지금은 왜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제 목숨도 버리겠습니다.’하고 큰소리쳤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정말 나를 위해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분명히 너에게 말하지만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


 자신도 예수님을 따라 죽기를 호언장담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실패에 계시들을 말씀하시는 사건을 봅니다. 그 의미는 ‘너는 넘어질 것이다. 이 길은 너의 육신적인 의지와 행동으로 따라 올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너는 아직 나의 길에 대해 계시되어지지 않았다. 너는 알고 있지만, 너는 또 알고 있지 못한다. 너는 오늘은 아니지만 후에는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따라올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너는 오늘 넘어질 것이다.’라는 의미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고 느껴집니다. 


 이 구절을 묵상하면서 드는 생각은 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리 냉정하게 말씀하셨을까? 라는 점입니다. 왜 베드로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시지 않으셨을까? 실패에 대해 왜 미리 말씀하셨을까? 예수님은 베드로가 넘어질 것을 아시면서도 이겨낼 수 있는 길을 왜 얘기하시지 않으셨을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왜 방관하는 태도처럼 보여지는가? 반대로 적극적이셨다면 왜 예수님은 베드로를 실패의 한계 상황으로 밀어넣으셨는가? 라는 질문들을 하게 됩니다. 


 많은 질문들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한계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돌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라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의 생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마치 신앙의 여정에서 자신이 신앙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 (믿음을 줄였다 키웠다할 수 있는 능력 같은) 과 같이 자신을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과 같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군사들에게 잡혀 끌려가시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느정도 해냈습니다. 아니, 베드로는 자신의 최선을 다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베드로는 할 수 있을 만큼 그 사랑을 드러내며 모든 것을 다했습니다. 인간적으로 할만큼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또한 더이상 할 수 없는 영역의 끝자락에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간과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한계를 자신이 뛰어 넘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에게는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에게 따르는 한계를 마주해야할 시간이 찾아오고 있음을 인식해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면서 인간의 힘으로 넘어설 수 없는 한계를 마주치게 됩니다. 이 한계점에서 우리의 신앙이 성숙할 것인지, 후퇴할 것인지 결정되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더 이상 어떻게 하라고 이런 상황을 주십니까? 제가 도대체 어떻게 하라고 그러십니까? 더 이상 뭘 하라고 그러십니까?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얘기하시는 것입니다. 그래. 너는 그 한계에 서 있어. 너는 오늘 밤 나를 부인것이다. 너는 그 한계에서 무너질 것이다. 너는 그 한계에서 좌절할것이다. 그렇지만 너가 이제 깨닫게 될 때가 되었다. 너가 진정으로 원했던 나의 길을 이제 너가 걸을 수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너에게 내가 해야할 일이 있단다. 그것은 너의 생각의 한계와 마주해야해. 너가 가지고 있는 한계에 마주해야해. 나는 너의 한계 안에 갖혀 있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나는 한계가 없는 하나님이란다. 나는 너를 한계가 없는 나의 신부로 부르기 원하기 때문이란다. 너는 상상으로도 한계를 가지고 있단다. 하지만 나는 그 상상보다 더 큰 일을 하기 원한단다. 너는 이제 그것을 보아야한다. 나는 너에게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 오늘 너에게 실패에 대한 메시지를 주었단다. 이제 너는 한계가 없는 나의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너에게 모든 것을 부워 줄 것이다. 너의 한계가 무너지고 나의 제한받지 않는 능력이 너에게 부어지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되어졌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 부인하며 그의 신앙과 믿음이 처절하게 깨어지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고난 당하시는 옆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신과, 자신은 한계가 없을 것이라고 착각했던 처절한 실패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것처럼 우리는 이 실패의 시간 가운데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을 알아가는 시작점이 됨을 깨닫게 됩니다. 


 요한복음 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베드로는 실패로 넘어진 혼돈 가운데서도 이 말씀을 이해해야하는 부름이 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깨달았을 것입니다.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이 있었구나. 내가 예수님의 사랑을 아직 알지 못했구나.’ 라고 고백하게 되어지는 겸손함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우리의 한계에 직면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이것은 진정한 성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도 그 한계를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직면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뜻의 길로 가기 위해 우리가 내려져야 하는 한계에 직면하게 하십니다. 하지만 이 실패에 대한 계시는 우리에게 한계가 없으신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과 능력이 부어지는 만남의 장소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실패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대한 사랑과 능력이 시작되는 순간에 서게 하셨음을 깨닫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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