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하심을 본 아비멜렉 (창세기 21:22~24)
그 무렵에 아비멜렉과 그의 군사령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하나님은,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당신을 도우십니다. 이제 여기 하나님 앞에서, 당신이 나와 나의 아이들과 나의 자손을 속이지 않겠다고 맹세하십시오. 당신에게 한 것처럼, 당신도 나와 이 땅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맹세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시고, 은혜와 은총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을 아비멜렉은 보았다. 아브라함이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도우신다고 아비멜렉은 자신의 입을 열어 고백한다. 그렇기에 그 하나님과 함께하는 아브라함과 언약하기 원했다.
은혜가 은혜 될 수 있는 것은 은혜를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알 수 있는 눈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 은혜는 하나님이 주신 은총과 긍휼,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이다. 내가 할 수 있어서 해낸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일하신 것을 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로 여겨지지 않을 때가 우리 가운데 많이 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그 은혜를 은혜로 볼 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이 시대에 사단의 속임은 우리가 받은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끔 만드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 이면에는 나의 권리라는 주장이 뒷받침하고 있다. 내 자아의 주장을 강하게 하면 할 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우리는 은혜를 가치없게 여기고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에 대한 눈이 가려져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이 일하신 것에 대해 너무나 낮은 가치평가들을 들을 때 마다 마음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반대로 작은 일처럼 보이는 것들을 기뻐하며 감사함으로 간증하는 사람들을 본다. 은혜를 은혜로 받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더 큰 은혜를 불러들이는 사람들이다. 아비멜렉과 같은 높은 자들과 언약을 맺는 것처럼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할 수 없는 영역의 일들을 감당하고 계시고,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를 말씀하신다. 오히려 내가 이해하고 있지 못했지만,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지지와 도우심을 받고 있는 은혜 가운데 살고 있다. 너무나 큰 은혜여서 우리가 다 해아릴 수 없어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우리 삶에 충만해 있다. 그렇지만,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그분 자신을 드러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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