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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있는가? (출애굽기 33:12~23)

jeremy kim Articles/토라포션 - 출애굽기

by jeremy_kim_78 2021. 3. 2. 21:28

본문

 

12.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1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15.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고 분노하심에 대해 돌이키는 약속을 받았지만, 다시한번 하나님께 그 약속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현현하심과 임재와 영광을 보기 원했습니다.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출애굽기 33:13)

 

우리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은 1장18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복음 1:18)

 

또한 하나님께서도 나의 얼굴을 보지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22~23절)

 

 그렇다면 모세와 장로들이 산에서 하나님과 만나 깊은 시간을 갖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또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했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신 민수기 12:8의 분명한 말씀은 우리를 당혹케 합니다.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민수기 12:8)

 

입과 입으로 나는 그에게 말하고 보여 주면서 행하되 수수께끼로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 여호와의 모습을 그는 본다. 그런데 어떻게 너희는 내 종 모세에게 대항하여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느냐? (민수기 12:8 직역성경)

 

 서로 충돌되보이는 이 구절들의 말씀을 생각해보면, 모세는 하나님을 보았지만, 하나님의 모든 것을 못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하였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볼 뿐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보여준 영광은 모세와 대면인 만남 즉, 명백한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본인 스스로를 우리에게 보이신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너무나 많습니다. 모세는 70인 장로들과 함께 시나이 산에 올라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만남 이후에 모세는 자신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모세의 갈망은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아는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출애굽기 33:18)

 

 장로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만족했지만, 모세는 정작 자신은 하나님을 정말로 본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원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보았던 하나님의 모습보다 더 비밀한 영광을 갈망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시각적인 영광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선포함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출애굽기 34:6~7)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의 이름안에 성품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word가 아닌 voice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영광을 알리신 것처럼 우리 안에서도 세밀한 voice로 말씀하십니다.

 

또한 성경은 인류가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한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을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시며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을 알리시기 위함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시지 않으신다면 누구도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말씀이신 생명의 voice로 알리십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모세에게 선언한 바로 그 성품을 드러내는 살아있는 말씀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볼 때,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의 영광을 보는 것을 고린도후서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7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13절)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4절)

 

 예수님을 통해 감춰져있던 비밀과 영광이 드러나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24)

 

인간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는데,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루터는 하나님의 가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본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한복음 14:9)

 

 그렇기에 모세나 야곱이나 이사야 같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보았다고 한 것은 창세전부터 함께하신 삼위일체 성자하나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다른 차원입니다. 우리가 영광에서 영광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수건이 벗겨져 얼굴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 주님이 주신 긍휼과 사랑의 주님으로 그의 얼굴을 비춰주십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갈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갈망해야 합시다. 주님의 영광을 비춰주소서. 라고 기도해야합시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할 때, 우리의 구원자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얼굴을 보게하시며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되도록 인도하십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영광을 보이소서. 주님의 이름을 내게 알리소서. 수건을 벗을 것과 같이 주님의 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케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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