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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중보기도 (창세기 18:15~33)

jeremy kim Articles/토라포션 - 창세기

by jeremy_kim_78 2020. 11. 2.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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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16.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20.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24.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2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27.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28. 오십 의인 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29. 아브라함이 또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31.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3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소돔의 죄악 때문에 심판하실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두천사와 함께 소돔으로 길을 떠나실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이 얼마나 악한지를 물어보십니다. (21,22절, 19:1)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22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놀라운 믿음의 모습을 아브라함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다라는 의미는, 전투를 위해, 간청을 위해, 화해를 위해 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동일하게 하나님께서도 소돔을 향해 가실 때, 전투를 위해, 간청을 위해, 화해를 위해 가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소돔 심판 앞에서, 전투적으로, 간청하며, 화해를 위해 중보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 안에 있는 긍휼을 일으키는 것을 중보의 초점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긍휼로 인해 하나님은 양보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즉, 긍휼의 하나님은 중보기도를 통해서 일어나게 됩니다. 중보기도가 세상의 어떤 힘보다 더 큰 이유는 하나님의 긍휼을 일으킬 수 있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중보기도를 통해 우리 가정과 교회와 나라가 하나님의 긍휼로 은혜 안에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는 아브라함은 소돔의 죄악에 대해 죄를 회피하거나 희석하지 않았습니다. 소돔의 죄악은 동성애와 거짓과 우상숭배등 많은 죄악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나그네를 대접하지 않는 이기적인 마음에 대해서 하나님은 또한 지적하십니다. 두 천사들이 저녁때에 광장에서 롯을 시험하였을 때, 다른 이들은 두 천사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소돔은 배품이 없는 이기적인 사람들에 대한 심판이었음을 또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죄악에 대해 아브라함은 핑계나 다른 이유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죄에 대한 핑계나, 다른 선한 일로 하나님께 죄악을 대신하는 것은 올바른 중보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주님은 회개하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죄에 대해 온전히 회개할 때, 우리는 중보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긍휼함을 받게 됩니다.

 

 두번째로는, 아브라함은 '나는 의롭고 저들은 악하다'라는 관점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입니다'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이들의 죄악을보며 중보기도할 때, '저 죄 많은 사람을 변화시켜 주십시요' 라고 기도하며 '나는 의롭다'라는 정의 안에서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죄악이 자신의 죄인 것처럼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 용서를 구하셨던 것처럼 아브라함은 겸손히 하나님께 구했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셋째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 하나님 안에 있는 긍휼을 구하는데, 그것은 소돔성 안에 있는 '의인들, 의로운 개인들을 위해'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의로움과 긍휼의 마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요구조건은 하나님께 응답되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심판을 이기듯 50명에서 시작된 의인의 숫자는 10명까지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것처럼, 우리가 바라보는 예수님께서는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중보기도를 통해서 배우라 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13)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긍휼을 우리 삶에 풀어낼 수 있는 중보의 자리로 부르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심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가 다 용서한다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는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심판과 자비를 동시에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과 그 아내의 과 두 딸의 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창세기 19:16) 

 

 하나님은 소돔의 심판인 공의를 행하는 순간에도 자비를 더하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셨고 우리의 죄와 죄의 권세에 대해 예수님께 진노를 쏟아 부으심으로 온전한 공의와 심판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만 온전한 공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의로움은 걸레를 빨아서 다시 쓰려는 노력과 같습니다. 나쁜사람을 선한 사람 만들려하는 노력이지만, 예수님의 의로움은 죽은사람을 살게하는 부활의 새로움입니다. 

 

 예수님의 십가자는 온전한 심판을 가져오며, 하나님의 긍휼을 이 땅에 풀어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중보기도로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이런 아브라함과 같은 중보자들을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우리안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갈망하는 은혜가 부어지고 주님을 찾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긍휼과 심판을 온전히 이루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시고 주님의 긍휼이 이 땅에 부어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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